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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괴물을 필요로 한다.
 
 
 
실존하지도 않으면서 실존 이상의 현존감을 유지하는 개체, 그것이 이른바 괴물이다. 양립 불가한 존재감(있기도/없기도)을 단일한 몸통에 구현하는 만큼, 괴물을 대하는 우리의 입장 역시 양가적이며 분열적이다. 들쭉날쭉한 인간 심성이 결과적으로(자신의 마음을 쏙 빼닮은) 괴물의 형상을 지어낸 것이리라. 괴물 설화는 허구적 상상력이 용인하는 범주 내에서 제조되기도 하지만, 꽤 그럴 듯한 목격담과 객관적 증거 자료가 뒷받침 되는 양, 그 존재감이 인정된 사례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그 둘 사이의 경계란 실로 불투명한 것으로 판명되기 일쑤다. 12세기 경 쓰인'가짜 서신' <프레스터 존의 편지Letter of Prester John>에는 독이 든 숨을 내뿜는 바실리스크basilisk, 사자 머리에 몸의 반은 용 나머지 반은 염소인 키마이라Chimaera, 외눈박이 키클롭스Cyclops 등이 묘사되지만, 그 흥미로운 서사란 결국 미지의 땅에 대한 중세 시대의 매혹이 픽션의 모양새로 표출된 것일 게다. 또 동서고금에서 널리 관찰되는 용dragon에 대한 참으로 다채로운 구전(口傳)들, 그리고 흡혈귀, 늑대인간을 둘러싼 괴담 등은 모두 허용 가능한 상상력을 토대로, 꽤 높은 소비지수를 자랑하는 허구였다. 반면1934년 한 외과의사가 스코틀랜드 네스 호수에서 촬영한 사진 때문에 폭넓은 인기를 얻은 네스 호 괴물Loch Ness Monster이나, 설인(雪人)에 대한 집요한 믿음은 이것을 촬영했다며 제시된 사진 기록과 동영상을 통해 흡사 실제인양 회자되었던'대표적인 날조(hoax)' 사건들이다. 그럼에도 전자(용, 반인반수, 흡혈귀)가 유포 당시 진담처럼 인구에 회자되었을 가능성을 배제 못하는 것처럼, 이미 고의적 날조임이 판명된 후자(네스호 괴물, 설인 등)를 둘러싸고, 여전히 그 존재를 기정사실로 믿으려는 어떤 악착같은 인심(人心)이 존재한다. 기괴하고 위협적인 외관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열광적 마니아 그룹을 통해 그 건재를 과시한다.
동시대적 시공간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동시대인의 마음 한 구석에 똬리 튼 셀 수 없는 괴물들의 불멸의 생명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것은 두 가지 상반된 요인을 통해 설명될 것이다. 이건 마치 괴물의 양가성을 닮아있다. 먼저 흡혈귀 영화를 필두로, 일련의 공포물에 내려진 비평적 진단을 따를 필요가 있다. 요는 이렇다. 당대적 불만과 부조리를 괴물이라는 왜곡된 형태 안에 투영시킨 것으로, 이때 괴물이란 극복될 수 없는 현실의 공포와 불만에 대한 상징이라는 것이다. 오랜 전승을 따라가 보면 용은 인류 최초의 영웅이 싸워야하는 대상으로 곧잘 묘사되었다. 게르만 영웅 베어울프Beowulf, 기독교 전사 성 조지Saint George, 원탁의 기사 랜슬롯Lancelot 등이 용과 대적했다. 이때 용은 천지재변이나 초자연적 현상(과학 기술이 발달되지 못한 과거에는 능히 그렇게 보였을)에 대한 인류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가상의 악마였을 것이다. 한국 영화<괴물The Host>은 봉준호 감독의 전면 부인에도 불구하고, 분단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남한의 정치사를 좌우하는 미군 주둔(혹은 미국과의 혈맹)을 영화 속'괴물'에 투사한 걸로 해석하는 비평적 기류가 존재한다. 영화의 도입은 용산 미군기지에서 포름알데히드를 하수구에 방류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는2000년'맥팔랜드 사건'(용산 미8군 기지 영안실에서 부소장 맥팔랜드 앨버트Mcfrland Albert가2000년2월9일 정화시설 없는 하수구에 포름알데히드20박스(457ml 480병)를 무단 방류토록 지시한 사건으로, SOFA 때문에 책임자 처벌을 못함)이라는 실화에서 동기를 얻은 것이니, 감독의 의도야 어떻건 이때 영화 속 괴물과 공포의 대상으로서 미군(미국) 사이에는 모종의 관계성이 엮인다. 괴물의 인위적 탄생에 관한 또 다른 요인은, 앞의 것과 정반대 이유로부터 나온다. 사회구성원 개개인이 대적할 수 없는 거악에 맞설 대항군으로 초자연적인 존재를 내세우고픈 보편적 심성이란 게 있다. 허구적 대중문화 속에서'인류 구원을 목적으로' 탄생한 다채로운 슈퍼 영웅이 여기에 속한다. 현대적 형태로 배트맨, 스파이더맨 류의 만화 영웅은 친숙한 인간 외형 안에 인류 문화사에서 사악하지만 영묘한 동물로 묘사되어온 박쥐, 거미를 이종교배한 결과로서, 일종의'선한' 괴물의 탄생을 알렸다. 그러나 정치사회적 절대 거악에 맞서려고 강력한 괴물을 설정한 이런 허구적 발상은 비단 볼거리를 희구하는 대중문화의 산물만은 아닌 듯하다. 근세 정치관을 정립한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의<리바이어던Leviathan>(1651)은 구약 욥기Book of Job에 등장하는 가상의 바다괴물 리바이어던의 이름을 자신의 정치철학 저서명으로 고스란히 가져다썼다(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욥기의 괴물 리바이어던이 실은 악어일 거라고 짐작했지만). 어째서 홉스는 괴물을 필요로 했을까? 홉스는 절대왕정에 대한, 사회계약론The Social Contract을 내세우면서 위임 받은 권력은 교회나 그 무엇보다도 우위에 있는 절대 권력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동기에선 약간 차이가 있지만 고대 중국에서 절대 권력을 꿈꾸 황제를, 가장 자비로운 영적 동물인 용의 선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은 이유도 유사한 효과를 노린 것이리라. 홉스의 사회 계약론은 무력할 밖에 없는 원자적 개인이 시민사회 혹은 정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으로서, 절대왕정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개인이 자연권 일부를 양도함으로써(이는<리바이어던> 14장에서14장에는'권위 부여하기authorization'이라는 개념으로 나타남), 통치권자로부터 보호를 보장받는 설정인데, 이것이 사회계약론의 핵심이다. 즉 과거에 맹위를 떨친 교회권력이나 왕권신수설The Divine rights of Kings에 반대해 통치자가 복종을 대가로 백성을 보호한다는 계약관계에 놓인다. 하지만 그는 대리인이며 계약이 끝나면 죽을 운명인 신mortal god이기에, 지위에선 격하된 것이다. <리바이어던> 초판 겉표지[도판1]는 절대 군주의 모습이 정중앙에 보이는데 그의 인체는 군중들의 집합체로 구성되어 있다. 즉 그의 권력은 다수의 동의에서 나온다. 홉스의 유사 민주주의 이론이 반영된 오늘날 세상이 나아지긴 했어도 거악이 사라지진 못했다. 그러면 대체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괴물의 연대기에 비춰볼 때, 이승애의 연작은 그 안에 편입되어 기꺼이'괴물'로 분류될 수 있다. 이승애가 작업을 괴물로 공식화한 건2006년'두아트 갤러리do art gallery' 개인전 부터로 봐야할 것 같다. 2006년'애적슨(哀敵son)'과2007년의 신종 괴물은 전형적인 형상을 갖춰 구시대의 신화로부터 불러온 모양새지만, 각 괴물마다 붙어있는 등록번호(혹은 분류기호)는 현대적 대량생산체계의 산물을 연상시킨다. 이름, 애적슨이라는 단서로는 이 정체모를 괴물족의 캐릭터를 식별하기가 매우 곤란하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모종의 슬픔과 관련이 있고, 괴물 자신보다 인간(정확히 말하면 이승애 자신)이 직면하는 현실적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한 구원자의 자격으로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그런 점에서 홉스의<리바이어던>의 발상과 대동소이하다. 이승애의 괴물은 그래서 괴물의 라틴어 원어monstere(보여주다라는 뜻)의 의미를 구현하는 존재로, 인간 내면의 어두운 힘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앞서 나는 괴물의 탄생 배경을 크게 둘로 구분했다. 인류가 직면한 사회적 공포와 불안이 투영된 나쁜 괴물과, 사회 거악에 맞설 대항군으로서의 선한 괴물의 연출로 작가의 괴물은 후자에 해당될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 괴물의 형상을 따른다. 이종 교배의 하이브리드 형상을 하고 있고, 조합된 신체는 어떤 동물/식물종에서 가져왔을 가능성이 크다. 2006년 전시장 벽에 걸린'애적슨1호'[도판2]의 목적은(인간이 느꼈을) 슬픈 신경을 예민하게 포착해 그것에 반응하는 것, 즉 그 슬픔의 원인을 제거하는 임무를 띤다. 즉 일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현재적 불만과 정치 사회적 부조리, 대적할 수 없는 거악을 일망타진 하고픈 나약한 개인들의 집합적 욕망을, 상상력의 형태로 내세운 것이 이승애의 괴물들이다. 이들의 하이브리드 외관은 동식물 개체별로 유능한 기관들을 종합해서 절대악에 맞서려는 계산이 깔려있다.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혐오스럽고 거부감을 주는 외형을 하고 있다. 나뭇가지에 추락하기 일보직전으로 매달린 괴물'훤'은 검은 가시(이승애가 설정한 악인 것 같다)와의 연이은 결투를 이어가며 패배를 거듭하지만, 그럼에도 지겨운 싸움에 언제나 임전무퇴로 임한다. 일견 천하무적 같은'훤' 은 포유류의 치아, 파충류의 길고 굵은 몸통과 다리를 하고 있는데, 이는 동서고금에 등장하는 갖가지 괴물들의 조합 원리를 따른 것으로, 작가의 육안으로 관찰한 가능한 모든 강력한 생명체들을 한 몸에 구현시킨 결과다. <리바이어던>에선 사악한 집단에 맞설 만큼 강력한'괴물' 정부'monster' government를 세우기 위해 사회 구성원이 그들의 몸통으로 정부(절대군주)의 인체를 구성하는 것처럼. 이승애의 괴물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피조물을 하이브리드로 지어내고 그에게 헤게모니를 위임하고 그 대신 위안을 얻는다. '훤'은 언제나"대단히 분노에 차있다". 괴물의 분노는 물론 세상사에 지친 군중의 분노를 대변하는데, 그는 두려움이 싸움의 패인(敗因)임을 안다. 한편 비교적 표범의 몸통에 충실한'Green Eye'는 입 주변은 포유류의 날카로운 치아대신 편형동물 무더기로 대신하고 있다. 이는 신화 속 메두사의 머리를 변형적으로 계승한 것 같기도 하다. 'Green Eye'의 머리에 붙어있는 총4개의 눈은 인류의 분노가 보내는'푸른 신호'를 보다 잘 식별하려는 배려 같다. 인류의 슬픔이 하나의 신호로 이 괴물에게 전해진다는 작가의 설정은, 위급 상황 발생 시, 약호로 연결된 구원 요청자와 선의의 괴물 사이의 관계를 떠올릴만하다(ex. 배트맨에게 구원을 요청할 때 고담 시Gotham City가 천공(天空)에 쏘아 올리는 박쥐 모양 조명). 괴물'Mother'는 머리에 난 뿔 여섯 개와 뱀의 비늘이 돋은 얼굴, 긴 콧수염 등 어떤 면에선 가장 동양적 용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품 안에는 원생동물 혹은 편형동물 세포들이 한 아름 안겨있다. 'Mother'의 모성애는 절망에 빠진 인류에 대한 일반적 위로를 표상하는 것 같다.
전지 사이즈를 짝수로 이어붙인 대형 드로잉 외에도'아라리오 서울' 2층 전시관에 설치된 일명 표본 작업에 대해서도 한마디. 마찬가지로 괴물 연작이다. 기괴한 하이브리드 외관을 갖춘 이 왜소한 괴물은, 피부가 말라 비틀어져 골격 위로 달라붙다시피 한 처절한 주검이다. 이 소형 괴물들은 그래서 측은하다. 1층 전시관에서 대형으로 재현된 괴물이 인간 심성 안에서 투쟁 중인'현역' 괴물의 활약상을 보여준다면, 표본실에 박제된 나약한 괴물은 건드리면 바스러질 만큼, 몸통에서 한줌의 숨결마저 느껴지지 않는 미이라다. 대형 괴물의 본질이 우리 심성에 도사린 분노의 현현임과 동시에 악에 맞서는'선한' 임무를 수행한다면, 소형'미이라' 괴물의 본질은 인간 심성에 비친 사회 소수자에 대한 연민이 현현된 것이다. 작가의 진술을 인용하면, 소형 괴물 중 잠자리 날개를 단'아저씨' 미이라는 한 노숙인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것으로, 사회에서 버림받은 낙오자에 대한 측은함이 괴물의 형체로 배출된 또 다른 예다. 괴물이라는'거부 대상'이 이런 양면성을 갖는 예는 매우 흔하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코끼리 인간The Elephant man이라 놀림을 받은 실존 인물 조셉 메릭Joseph Merrick을 우리는 안다. 선천적 결함으로 그의 인체는 심각하게 뒤틀려있었다. 그래서 그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숨졌을 때, 연민이 그에게 쏟아졌다. 실제 그의 삶은 연극, 영화, TV를 통해<코끼리인간The Elephant man>이라는 이름으로 수차례 극화되었다.
괴물은 마음의 병리현상이 낳는다. 그래서 괴물은 실존하진 않지만 끊임없이 인간사에 개입한다. 이승애가 괴물 연작을 집요하게 지어내는 것도 그 발단은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만연된 부조리와 공포에 대한 불만이 조형적 해법을 찾아 나선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앞서 살폈듯이 고금의 괴물들은 무릇 비슷한 이유로 탄생하고 소멸한다. 홉스는 사회적 거악을 견제하고, 스스로를 보호받기 위해 구성원 모두가 그들의 권리를 절대 군주에게 위임한다는 사회계약론의 기반을 닦았다. 물론 그것은 당시로선 천재적 발상이고, 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우는데 초석이 되어줬지만 그의 이론으로 인해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의 거악이 소멸된 건 아니다. 오히려 어리석은 구성원의 그릇된 선택과 위임이 사악한 절대군주를 권좌에 올려놓는 역설을 낳았다. 그것이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 정치의 모습이다. 이를테면'정통성을 갖춘 사악한 통치권자'의 등장에 시민사회가 자진해서 기여하는 꼴이다. 홉스가 완벽한 국가를 위해 불러온 구약의 리바이어던이 결국 괴물의 본성을 감추지 못했다고나할까? 2008년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위선, 혹은 더 좁게 남한 정치사를 직시해보자. 권력을 위임받은 리바이어던이 구성원들과의 사회 계약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꼴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이 불편부당한 현실에 분노하고 복수심을 불태웠던 이라면 누구나 그 리바이어던에게 개인으로서 맞서는 게 얼마나 무력한 지 경험한다. 분노하는 개인은 언제나 무력하고, 횡포를 일삼는 거대한 상대는 정복될 수 없는 리바이어던이다. 이때 우리가 뇌리에서 뽑아낼 수 있는 가장 손쉽고 무해한 해법은 그 리바이어던에 맞서 싸울 또 다른 신종 괴물체의 발명이다. 괴물은 그런 이유에서 계속 제조되고 신봉된다.

 
참고도서
움베르토 에코; 오숙은 역,『추의 역사』, 서울: 열린책들, 2008
타임라이프 편; 김명주 역,『용: 서양의 괴물 동양의 반짝이는 신』, 서울: 분홍개구리, 2004
김용환,『리바이어던, 국가라는 이름의 괴물』, 서울: 살림, 2005
봉준호 외,『괴물= (The)Host : illustrated journal of making』, 서울: 21세기북스, 2006
최정은,『동물•괴물지•엠블럼: 중세의 지식과 상징』, 서울: 휴머니스트, 2005


글 반이정 / 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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